수입밀가루에 대해서..
Life With./Food 2012. 3. 14. 09:51 |원조, 분식장려운동...우리밀 짓밟은 제국주의
제국주의와 결탁한 정권, 민족농업 기반마저 무너뜨렸다
김경환 기자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소비하고 있는 밀가루의 대부분이 수입밀가루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밀가루 자체가 몸에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 수입밀가루가 우리 몸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우리 땅에서 거의 사라진 우리밀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몇몇 뜻있는 단체들과 개인에 의해 시도가 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식탁과 먹거리를 점령한 수입밀가루에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밀의 자급률은 현재 1%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 언제부터 우리밀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농약 범벅인 수입밀가루가 버젓이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것일까?
'원조'와 '분식장려운동', 우리밀 대신 수입 밀가루가 주인행세를 하다
우
리나라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중요한 대외원조정책 대상 중 하나로 취급됐다. 1945년 9월부터 미군정 기간 동안 GARIOA
원조가 이뤄졌고, 1948년 12월 양국간의 원조협정 체결에 의해 1949년부터 ECA원조가 진행됐다.
1950
년에는 CRIK원조, 1951년엔 UNKRA 원조, 1953년엔 ICA원조 등의 이름으로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약
26억9,000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원조를 제공받았다. 당시 일제 식민지로부터 갓 벗어나자마자 한국전쟁에 휩싸인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한 처지였고, 이런 상황을 이용한 미국의 원조는 밀려들어왔다.
이때 이뤄진 원조 수입은
방직, 제분, 제당산업 등 소위 '삼백공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주요한 수입품은 쌀, 밀, 보리 등의 식료품을 비롯
스후직사, 면직물, 원당, 양모, 목재 등 소비재 공업용 원료와 화학비료 등이 주를 이뤘다.
1952년부터
정부가 비청산협정지역으로의 무역확대정책에 따라 수입시장이 미국, 태국, 홍콩, 대만, 서독, 이탈리아 등으로 다변화됐지만 특히
미국은 같은 해 한미중석협정 체결과 원조물자 제공의 급격한 증가로 1955년부터 최대 수입국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 뿐만 아니라 뒤를 이은 박정희 정권시절에도 그렇지만 밀가루를 제공하는 미국에 대한 예찬은 요란했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은 '분식장려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 강제적으로 우리 음식 문화를 뒤바꿔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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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즉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은 여러가지 각도로 홍보가 됐는데, '밀가루를 먹으면 키도 커지고 머리도 좋아진다'거나 '밀가루는
쌀보다 영양이 많다'는 식이었다. 물론, 말도 안되는 것들이었다. '분식장려운동'과 분식예찬론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이
뭔가 비정상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력하게 이뤄졌다. 학교에서도 도시락 검사를 했으며 심지어 관공서의 구내식당에서는 쌀밥으로 밥을
짓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라면'의 등장...수입 밀가루 확산에 날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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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려운동은 정권의 선전과는 달리 국민의 영양과는 무관하게 쌀이 부족한 상황에서 넘쳐나는 미국의 원조밀가루를 먹어치우기 위한 데에
목적이 있었다. 싼값에 미국으로부터 대량 원조를 받아 국민들에게 강제로 먹였던 것이다. 그 결과 오히려 주식인 쌀이 홀대를
받고, 수입밀가루가 우리밀을 밀어내고 주인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1963년 9월 15일 '삼양라면'의 탄생과 함께 수입 밀가루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라면은 정권의 '분식장려운동'에 힘입어 불티나게 팔려나가게 됐으며, 수입 밀가루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매개체가 됐다.
라면은 또한 개발독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저임금' 정책과 맞물리면서 확산된 측면도 있었다.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라면을 주식삼아 먹게 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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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려운동은 우리밀의 생산기반을 철저히 파괴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값싼 수입밀과의 경쟁력에서 우리밀은 버틸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밀 생산농가의 감소는 84년 정부의 밀 수매마저 중단시켰다. 한번 파괴된 우리밀 생산 기반은 현재까지도 좀처럼 복구되지 않고
있다.
반면,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70년 26.1kg이던 것이 80년 29.4kg으로, 2004년엔 35kg으로 늘어났다.
늘
어난 밀 소비량은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농사의 기반마저 파괴하고 있다. 쌀 소비량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남아도는 데도 불구하고,
수입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쌀재협상을 비준한다면 그 피해는 우리밀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파괴된 1차산업...생명줄을 남에게 맡길 것인가
파괴된 1차산업은 곧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이 된다.
미국의 최대 농산물 수출기업 '카길'은 1988년 식량난을 겪던 이북과 아연과 구상무역형태로 밀 2,000톤을 수출하기로 계약했지만 북의 아연궤가 준비되지 않자 운송중이던 수출선을 공해상에서 돌려 다른 나라로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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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도 비슷한 경험을 이미 했다. 80년대 냉해 피해를 입었을 당시, 미국의 곡물을 5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사들여야했고,
IMF로 경제가 휘청이던 당시에도 밀가루 가격은 오히려 70% 이상 뛰어올랐다. 국내 수입곡물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카길의
농간 탓이다.
우리밀의 경험은 더이상 우리 민족의 목숨줄인 먹거리를 다른나라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절실한 교훈을 주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쌀협상 비준안 처리를 둘러싸고 정치인들은 이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2005년10월14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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